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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한국문학의 미에 빠지다/이생규장전 등

by 이수진 2021. 1. 9.

우리 고전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강줄기를 이루는 작은 물방울들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누구나 문화 전통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누리며 전승하는 주체로서, 조상에게서 이미 우리만의 정서가 흐르는 피를 물려받았다. 열녀 춘향, 효녀 심청, 개혁 청년 홍길동, 이상적인 남성 양소유, 이들은 우리의 정신과 정서가 만들어 낸 인물들이다.

 

우리는 누구나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전통에 기여하고 누리며 전승하는 주체라는 것이 인상깊었다. 외세에 의한 문화적 핍박과 비극의 근대사에 비롯한 것인지, 세계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은 전통 문화에 대한 애호와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면 좋겠다.

 

길에 앉은 저 선비 누구이기에

푸른 도포 큰 띠가 어리비치나.

우리 함께 날아가는 제비가 되어

짝지어 구슬밭 나들고 담도 넘도지고.

 

복숭아 오얏나무 꽃도 많이 피었는데

원앙새 수놓은 이불 위에는 달빛도 아름다워라

 

누각의 굽은 난간, 부용지를 눌렀는데

연못 위 꽃 사이에 사람소리 정겨워라

꽃 향기 안개처럼 피어나니 봄은 무르익었는데

새로 지은 노래 가사 흰 비단에 옮겨 적네.

달빛 따라 꽃 그림자 돗자리 위로 옮겨 오고

잡아당기는 꽃나무 가지마다 꽃비가 쏟아진다

바람은 맑은 향기 가져다 옷깃에 뿌려 주고

여인은 봄빛을 밟으며 춤을 춘다.

비단옷 가벼이 날리며 해당화 가지를 스치니

꽃 사이 잠든 앵무새 놀라서 날아가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서 최씨낭자가 이생에게 연모의 마음을 전하는 시이다.

우리나라 시는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할 때도 그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숭아, 오얏나무, 원앙새, 달빛, 안개, 봄, 비단, 바람, 봄빛, 해당화’ 같은 단어들이 풋풋한 연모의 정을 전해주면서도 난잡하거나 과하지 않아 읽기 좋았다. 이런 감상도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인에게 ‘peach, silk, wind, spring’ 같은 단어에서 아름다운 풍경, 우아함, 연모 같은 것이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평소에 한국 문학은 재미가 없다며 싫어했던 나지만, 이생규장전에 나오는 시는 그렇지 않았다. 유럽의 사랑 시를 읽어보았을 때는 부담스러운 비유가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감상의 차이는 각 나라의 문학의 우수함이나 열등함이 아니라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우리 고전 소설 속에 투영된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이런 것들이 주는 고통과 기쁨, 슬픔과 환희, 그리고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인간 사회가 주는 제약을 뛰어넘으려는 꿈은 어느 날 불쑥 생겨났거나 문명화되고 세계화된 오늘날 비로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문명화와 세계화는 오랜 세월 동안 도도히 흘러내려 온 한민족이라는 강줄기에 더해진 자극과 변화의 결과일 따름이다.

 

이 부분을 읽고 한국 문학을 싫어하고 외국 작품만 선호해왔던 평소 독서 습관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우리나라 문화에 아주 무지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문화와 신화를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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